사람의 변화는 언제 시작되는 것일까.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다면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일까.
한완규 목사가 신앙 에세이 《자라나는 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를 펴냈다. 부제는 ‘길이 보이지 않는 날에도 하나님과 사람 곁에 머무는 믿음’이다.
이 책은 빠른 변화와 분명한 결과를 말하기보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사람의 성장과 기다림의 시간을 바라본다. 저자는 목회 현장에서 만난 성도들의 삶을 통해 오히려 자신의 조급함과 판단을 돌아보게 됐다고 말한다.
특히 책의 마지막에서 그는 “나는 말씀을 전하러 갔다가 그들의 삶 앞에서 말씀을 다시 들었다”고 고백한다.
《자라나는 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를 펴낸 한완규 목사에게 책을 쓰게 된 이유와 그가 바라보는 믿음의 성장에 대해 물었다.
― 책 제목이 인상적입니다. 왜 《자라나는 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라고 정하셨습니까?
사람을 오래 바라보다 보면 전과 조금 달라진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곧바로 했을 말을 하지 않고 한 번 멈추거나, 자기와 다른 이야기를 조금 더 오래 듣기도 합니다. 오래 마음에 담아 두었던 일을 전보다 조금 빨리 놓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변화는 아주 작아서 그 순간에는 잘 알아보지 못합니다. 사진으로 남길 수도 없고 숫자로 측정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비슷한 상황을 다시 만났을 때 알게 됩니다. ‘이 사람이 전과 조금 달라졌구나.’
그 변화는 우리가 발견한 그날 시작된 것이 아니라 훨씬 전부터 그 사람 안에서 자라고 있었을 것입니다. 책 제목은 그런 생각에서 나왔습니다.
책의 머리말에서도 저자는 한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내세우기보다 상대의 말을 조금 더 듣는 모습을 보고, 변화가 자신이 알아본 날보다 훨씬 전부터 시작되고 있었을 것이라고 돌아본다.
― 목회하면서 경험한 것이 책을 쓰는 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이 책의 많은 글은 목회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시작됐습니다.
목회자는 말씀을 전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저 역시 병실을 찾아갈 때에는 무슨 말씀으로 위로해야 할지 생각했고, 어려운 이야기를 들을 때에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에 제 마음에 오래 남은 것은 제가 했던 말이 아니었습니다.
오랫동안 대답을 기다리면서도 자기 자리를 떠나지 않았던 사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자기 몫을 감당했던 사람, 상처를 받았지만 그 상처의 말을 닮지 않으려고 애썼던 사람들의 모습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책 마지막에 이런 고백을 적었습니다.
“나는 말씀을 전하러 갔다가 그들의 삶 앞에서 말씀을 다시 들었다.”
제가 성도들에게 말씀을 전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그분들의 삶을 통해 제가 다시 믿음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 책에서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반복됩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목회를 하면서 사람을 오래 바라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오래 바라보는 것’과 ‘오래 판단하는 것’을 혼동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같은 문제로 다시 힘들어하면 ‘아직도 달라지지 않았구나’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제자리라고 판단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작 저 자신을 바라보면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도 알고 있으면서 같은 일을 되풀이했고, 결심하고도 다시 흔들렸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빨리 변화하기를 기대하면서 저 자신에게는 많은 시간을 허락했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지금 눈앞에 보이는 한 장면만으로 그 사람 전체를 말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생각하게 됐습니다.
― 그렇다면 목사님이 생각하는 ‘신앙의 성장’은 무엇입니까?
성장을 한 가지 모습으로 정의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많이 알고 맡은 일이 늘어나는 것도 귀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성장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예전보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시간이 조금 늦어질 수도 있고, 자기 말을 먼저 하기보다 한 번 더 들을 수도 있습니다. 잘못을 인정하기 어려웠던 사람이 “내가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성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맡은 일을 조용히 감당하는 모습도 그렇습니다.
그런 변화는 교회 통계에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주보에 실을 수도 없고 사진으로 남기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전과 달라졌다면 그 안에서도 믿음은 자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책에 ‘믿음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어떤 뜻입니까?
교회가 사람이 자기 믿음을 계속 증명해야 하는 곳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쓴 글입니다.
우리에게는 믿음이 좋은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는 부담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힘들어도 괜찮은 것처럼 말하고, 두려운데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친 사람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언제나 “힘을 내십시오”라는 말은 아닐 수 있습니다.
어떤 날에는 일어서라는 말보다 잠시 앉아 있어도 된다는 허락이 필요합니다. 해결책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는 사람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저는 교회가 그런 자리를 내어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목회자에게는 사람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지 않습니까?
물론입니다. 목회자는 말씀을 전하고 사람을 세워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너무 빨리 세우려고 하면 아직 앉아 있어야 할 사람에게 일어나라고 재촉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목회자가 사람의 모든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이 있지만 제가 할 수 없는 일도 있습니다. 말씀을 전하고, 기다리고, 곁에 있을 수 있지만 한 사람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시간을 제가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도 목회에서 배워 가고 있는 부분입니다.
― 책을 쓰면서 목사님 자신에게도 변화가 있었습니까?
책 마지막에 솔직하게 적었습니다.
사람을 기다려야 한다고 쓰면서도 저는 조급했습니다. 쉽게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속에서는 먼저 결론을 내렸고,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어야 한다고 하면서도 그 사람이 말을 끝내기 전에 제가 할 대답을 준비했습니다.
이 책을 썼다고 그런 모습에서 모두 벗어난 것도 아닙니다.
다만 전보다 사람의 말을 조금 더 오래 들으려고 합니다. 한 번의 모습으로 그 사람의 전부를 판단하지 않으려고 하고, 눈앞의 결과만으로 목회와 교회를 판단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사람들을 바라보며 쓰기 시작한 책이었지만, 쓰는 동안 가장 오래 들여다본 사람은 결국 저 자신이었습니다.
― ‘기다림’도 책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로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다만 기다리면 결국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는다는 뜻으로 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기도했지만 병이 낫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오래 기다렸지만 문이 열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기대했던 모습과 전혀 다른 결과가 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소망을 ‘모든 일이 잘될 것이라고 믿는 것’으로만 말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책에서는 소망을 원하는 결과를 미리 손에 넣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결과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으로 남으신다는 데 삶의 무게를 맡기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 어떤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까?
오래 믿었는데도 자신이 생각만큼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 실망한 분들이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가까운 사람의 변화를 오랫동안 기다리다가 지친 분들에게도 권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목회자와 교회 지도자들도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사람을 돌본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삶을 너무 빨리 설명하거나 결론 내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통해 어떤 답을 얻기보다 자신과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속도가 조금 느려졌으면 좋겠습니다.
― 독자가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한 가지를 기억한다면 무엇이었으면 합니까?
자신이 걸어온 시간을 너무 빨리 헛되었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의 모습을 그 사람의 마지막 모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아직 다 알지 못합니다. 책의 마지막에도 그렇게 적었습니다.
“나도 아직 배우는 중이다.”
어쩌면 믿음의 성장은 자신이 다 자랐다고 생각하는 데서가 아니라, 여전히 배우고 있다고 고백할 수 있는 자리에서 계속되는지도 모른다.
한완규 목사의 《자라나는 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바로 그 보이지 않는 시간을 오래 바라보는 책이다.








